최명희 / 혼불중에서 나는 봄의 밤 강물을 보았다. 달도 없는 야청 하늘 검푸른 등허리에, 몇 점 별빛, 새로 돋는 풀잎부리 여린[芽]처럼 눈 뜬 밤. 물 오른 어둠을 깊숙이 빨아들여 숙묵(宿墨)보다 더 검어진 산 능성이 반공에 두렷한 마루를 긋고 있는데, 그 산 그림자 품어 안은 밤 강물이 소리 죽여, 제 몸의 비늘을 풀며, 아득히 가득히 흐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것은 '돌아오는' 강물이었다. 언제라고 강물이 한자리에 서 있으랴만, 가을의 강물은 뒷모습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멀리 떠나가는 강물이요, 겨울 강물은 쓸쓸히 남은 그 물의 살을 벗고, 오직 뼈만으로 허옇게 얼어붙어 극한(極寒) 속에서 존재의 막투름을 견디는 얼음이다. 지난 여름, 무성하게 푸르러 눈부시게 젊고도 풍요로운 강물이 제 온몸을 수천 수만 수십만 개 은.. 더보기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7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