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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존경하는 목사님 만나는 것도 하늘의 은총

어제(9월 6일) 소그룹친교 시작하기 전 목사사모님께서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신다면서 저를 좀 더 교육시키면

소그룹을 위해서 좋지 않겠냐 하는 제의를 하시면서

제 의사를 존중하시겠다고.. 저는 일언지하에 거절..

 

여기저기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면 자칫 잘못하면 어디에고

정착되지 않는 외톨이 신세가 될 것 같고 그리고 이 나이에

공부라면 딱 질색..

 

분위기메이커로써의 존재감 보다는 일꾼으로 키울 목적이셨던 것 같은데

70 머리로 고상한 강좌 들어봤자 절반 가량은 흘려 버립니다.

지금의 제 대갈통 아이큐가 그렇다는 소리..후훗..

 

‘가라’ 전도하라’‘가르치라’예수님의 말씀이신데

살아온 날보다는 죽음의 연장선에 더 가깝게 와있는데 뭘 배워서

누구를 가르치고 지도하기 보다는 그저 내 뒤를 돌아보면서

정리 할 것은 앗쌀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합니다..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읽은 신,구약 성경완독은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결혼 전에..그때는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장로교..

두번째는 84년도에 성당에서 영세 받으면서 레지오 서기로 활동 할 때..

뭘 알아야 레지오 중간에 낭독되는 신부님 수녀님 꾸리실료 강론을

압축해서 쓸 수 있지 않겠어요.

 

세 번째는 1992년 대구가톨릭대학에서 2년 과장을 공부 할 때..

이때 3조 組長으로 뽑혔는데 2조 조장이 부산수녀원에서 공부하고

대구까지 원정와서 설쳐대는 바람에 머리 싸매고 매달렸습니다.

비싼 쌀밥벅고 너한테 질소냐..그런 배포가 좀 있긴 했었습니다..하하하


 

덕분에 졸업미사전에 열린 성서퀴즈대회에서 개인점수로 그 자매님을

납작하게 눌러버려 그날의 스타가 되어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받앗습니다.

 

네 번째는 98년도엔가‘여호와의 증인들’과 맞닥뜨렸을 때..

목이 마르다고 해서 순진하게 문 열어 주었고 오렌지 주스를

미시면서 질문이 주기도문에 나오는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며’

그 뜻이 뭔지 아느냐. 척 대답해 주었더니 움찔 놀래더군요.

 

그때부터 어찌나 끈질기게 현관벨을 눌러대는지 이거 안 되겠다.

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로 나가자 로 가닥을 잡았고 이때는

그 동네 월간지 ‘파수꾼’과 비교해가면서 읽었습니다.

 

장장 3년간을 끌어간 맞짱토론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 시기에 성경내용이 딱딱 정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목사님과의 토론에서 밀리지 않는 것도 이때문인 것도 같고..

 

하나님이 제가 인식교로 갈줄 미리 아시고 얘네들을 우리 집으로 인도???

그때 남편과 레지오 단원들이 걱정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잘못하면 넘어간다..

 

다섯 번째는 안식교로 발길을 옮기면서 목사님 내외분이

제 이름이 새겨진 성경책을 주시는 바람에..

침례 받기 전에 교회용어를 익혀야겠다는 신념으로

한 달 계획을 세워놓고 밤낮으로 매달려 가며 읽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성경 맛을 들인 터라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가며 여유롭게 좔좔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맛에 푹푹 빠져서인지 지금은 컴퓨터보다는 성경책 붙들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정독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고

남편부재로 인한 외로움을 탈탈 털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2014년 7월 12일 침례를 받았고 그날 저녁에 목사내외님이

저녁식사 모임에 가자면서 데리러 오셨고 車안에서 또 목사님과 맞짱토론..

30여분동안 ‘모세오경'‘대 예언서’'소예언서' '신약성서'

'요한 계시록'으로 나누어서 부분부분 중요대목을 주거니 받거니..

 

그날 장로님 댁에서 저녁식사 할 때도 분위기가 웬지 썰렁하다

싶으면 제게 말을 건네시었고 저는 화답으로 제 특기인 반전법으로

웃기는 작전으로 나갔고 아무튼 새내기 안식교 신자로써

거의 다섯 달만에 뿌리하나는 튼튼히 짱 박아 둔 셈입니다..

 

성당과는 분명히 다른 그 어떤 활달한 분위기에 무척이나

저를 괴롭히고 괴롭혀왔던 남편부재로 인한 외로움이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어울리고 열심히 돌아 댕기고 두손자 녀석들의

재롱에도 털어내지 못했던 그 외로움이..

 

역학공부 20년 넘기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굉장히 예리한 편인데

침례 신청하기 전 한달간을 목사님 내외분을 예의주시..

50대 중반으로 저와는 띠 동갑 이상 차이가 나는데 처음엔

그냥 한참 아래인 남동생쯤으로 생각 했었고 그래서 맞짱토론때

천주교 신자로써 밀리지 말자는 생각에서 그냥 저돌적으로

사정없이 탕탕탕 치고 나갔습니다.

지금은 존경심으로 마음하나 가득 차 있습니다.

 

강론중에도 돈타령 하는 거 한번도 못 들어 보았고

교회 간부들도 십일조 타령이 없었습니다.

냉면파티에 초대받아서 목사님 사택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도 검소한 세간살이여서 속으로 놀래기도 했었습니다...

으까번쩍이 아닌 교만함과는 거리가 먼 소탈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사람이 겸손 하더군요.

타고 다니시는 차도 좁은 골목길에 서슴없이

주차할 수 있는 그런.. 손수 운전하시기도 하고..

호화찬란 식당보다는 가정집의 소박한 밥상을 좋아하시고

언젠가 목사사모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지기네들은 월급쟁이고 임기제라고 합니다.

앞으로 2년 후이면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교회에서 거두는 성금은 오롯이 교회차지가 아니라 일부는

시골 개척교회 운영비로 일부는 본부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점은 천주교와 동일..

 

물론 교리에 있어서 천주교와 부분부분 차이가 나긴 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도.. 그 부분은 쓰지 않을게요.

천주교냐 교회냐 불교냐가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人性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어느 사이트엘 가나 개념 없는 목사님과 신부님 성토가 끊이지를

않는데 저는 그런 부분에서 한참 벗어난 네모 반듯한 목사내외님을

만난 편이었고 그래서 토요일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무엇보다도 강론이 성경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소그룹 모임때도 요란하게 박수치며 찬미가를 부르는 법도 없이

식시기도로 간단히 끝내 버리고 식탁에 놓인 요리 만들기 토론으로

나가기 때문에 매달 마지막 화요일이 무척 기다려지기도 하구요..

하나를 주면 곧 바로 두배로 갚아버리는것도 제 성격과 일치..